이들은 구합덕 성당 파견을 시작으로 교회와 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응답하는 다양한 사도적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고, 전쟁고아들, 부상자,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가족들과 노인들에게로 파견되었습니다.
설립자는 전쟁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 다가오자 이제 막 출범한 공동체의 소비녀들을 위해 서둘러서 규칙 초안을 마련하게 됩니다. 1945년 7월에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로부터 규칙서 승인을 받고, 1949년 2월 3일 교황 비오 12세의 추인을 받아 성가소비녀회의 카리스마와 사명을 명시하는 원천적인 초석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