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소비녀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 Language

설립자소개

설립자

설립자 성재덕 신부

  • 성가소비녀회의 설립자인 성재덕 신부는 1910년 9월 13일, 프랑스 에댕(Hesdi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28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35년 7월 7일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선교사로서 한국에 파견되었으며, 1939년 서울 백동(현 혜화동)성당 주임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으며, 한국의 상황 역시 일제강점 하에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 이런 시대에 삐에르 쌩제는 앞으로 닥치게 될 한국의 미래와 운명을 예견하고 이를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 때 마침 수도생활을 간절히 원하던 여성들을 눈여겨보게 되고, 1943년 12월 25일 예수성탄 대축일에 두 명의 여성들과 함께 공동체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기념관 설립자의 집

성가소비녀회는 서울 백동(栢洞, 현 혜화동)에서 세워진 첫 교구 설립 수도회로서 출범하게 됩니다. 설립자는 일제 강점 아래에서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 피난민들과 부상자들, 굶주리고 헐벗은 고아들이 생겨나는 등 전쟁에 따른 온갖 문제들을 예견 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교회가 세상에 그리스도의 인자하신 얼굴을 보여주고 모든 사람을 도와줄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하느님의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설립자는 신학교와 가르멜 수녀원이 있는 혜화동을 가톨릭 정신과 영성적 도움을 얻는 데 합당한 양성 장소로 선택하게 됩니다.
설립자는 수도생활을 갈망하는 여성들을 불러 “여러분이 혼자 지내면 위험도 하고 어렵게 일을 해도 큰 결과를 거두기 어려우니 함께 뭉치면 많은 공로를 얻을 수 있고 완전한 수도생활까지도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권고하게 됩니다.

  • 이렇게 해서 일제강점의 억압과 전쟁의 짙은 그늘 속에 버려져있던 이 나라에 기꺼이 헌신하고자 모인 열심한 여성들의 수도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1943년 12월 25일, 혜화동 성당 성모상 앞에서 설립자의 권고에 따라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며 순명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에 동참하신 성모님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하신 말씀과 한국의 순교자 김효임 골롬바와 김효주 아녜스가 재판관 앞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용감하게 답변한 것을 생각하여 서로를 ‘소비녀’라 부르기로 하고, 수도회 이름을 ‘성가소비녀회’라 명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