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 소비녀_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 Language

자료실 소개

자료실

소비녀_자료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잎크로버 작성일07-03-19 07:55 조회5,105회 댓글0건
  • 목록

본문





3월 19일 사순 제4주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법대로 사는 사람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주님과 함께 그분을 성령으로 잉태하신 성모님 마리아를 마음속으로 공경한다. 또한 베드로를 위시한 주님의 제자들을 존경하며,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을 마음속으로 우러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님의 아버지인 요셉에 대해서는 대수롭게 생각지 않으려는 것 같다. 성경에서도 그분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마리아와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나자 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 먹었다가 주의 천사의 말을 꿈속에서 듣고는 결혼을 했던 사람이었으며, 아우그스토 황제의 호구 조사령에 따라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았는데, 그것도 여관에서도 머물지 못하고 외양간에서 간신히 예수를 출산했던 가난한 사람이었다. 예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에집트까지 피난했다가 나중에 나자렛에서 목수를 하면서 성가정을 이끌어나갔으며 예수를 키우셨던 아버지인 것이다.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러한 고통이 요셉을 일찍 죽게 하였는지 주님께서 성인(成人)되신 후에는 전혀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러한 요셉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구절이 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법대로 사는 가난한 목수. 국가에서 호구 조사령이 내리면 임신한 마리아를 태우고 자신의 본고장으로 찾아 나선 사람. 주변머리가 없어서 임신한 아내를 외양간에서 재운 사람. 주의 천사가 꿈에서 시키는 대로 산 사람. 복음사가 마태오의 표현처럼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 이상의 큰 특징이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러나 요셉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그분의 외아들이신 예수를 위탁 키우시도록 허락받은 위대한 의인(義人) 이시다.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가 될 수 있으셨던 것은 그분이 비록 가난하지만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법대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이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우리는 요셉에게 분명히 배우고 있는 것이다. 주여. 우리도 요셉처럼 법대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법대로 사는 생활이야말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의 기본임을 깨닫게한 . 우리들의 임종을 지켜주시는 성 요셉이여. 우리가 죽을 때 우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 ≪ 하늘에서 내려온 빵 중에서/ 최인호 베드로≫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에 박혀 못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예수의 가장 궁긍적인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음으로써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예수의 삶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부분의 삶이 제 마음속에 깊게 각인돼 있습니다. 물론 예수의 삶이 가장 아름답게 활짝 꽃핀 부분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부분입니다. 만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면 우리 인류에게 그처럼 완전한 사랑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부분만을 너무 최고점을 생각한 나머지 예수의 나머지 삶의 과정을 간과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예수가 서른 살까지 열심히 목수로서 일을 한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삶은 이미 하느님에 의해 예비된 수동적 삶이었으며, 예수는 싫든 좋든 서른세 해 동안 설정된 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혹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는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대패질과 못질을 하고 산 노동자였습니다. 그의 손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여 있는 노동자의 손이었습니다.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에 박혀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에게도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능동적 준비 단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손에 굳은살이 깊게 박이는 목수 일을 하면서 오직 `그날`만을 기다린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도 주어진 삶의 목표를 위해 손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일을 하면서 준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원대한 계획대로 움직이는 단순한 피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러한 준비와 노력이 예수의 삶의 목표를 완성하는 기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준비 단계가 예수의 삶에 있어서 더 중요한 단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예수의 그런 준비 단계를 무시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저처럼 예수를 비노동자의 손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는 죽음을 통하여 사랑의 완성을 보여준 것도 위대하지만, 손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대패질을 하면서 인류를 구원할 준비의 시간이 없었다면 예수는 어쩌면 인류를 위해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운명에 순응하지 못하고 육체적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느님을 원망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양손에 못이 박힌 사실만으로도 예수의 손은 위대한 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손이 노동의 손이었기에 그 의미와 가치가 더 빛나는 게 아닌가 십습니다. 노동으로 다져진, 알알이 굳은살이 박여 있는 그 노동자의 손에 대속의 못이 박혔기에 예수의 손은 더 위대합니다. 만일 그런 굳은살이 없었다면 예수의 위대한 사랑의 손은 어쩌면 그 위대함이 조금 빛바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물며 예수까지도 준비 과정을 거침으로써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었습니다.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서 중에서/ 정호승 ▒ 예수님의 손에 생긴 굳은 살은 아버지인 요셉과 함께 목수일을 하면서 생긴 것으로 요셉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성전에 따르면 요셉과 예수님이 일을 한 목공소의 이름은 "가장 편한 멍에를 만드는 집"이라고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