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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숙 수녀님께 드리는 가을편지['을'들의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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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의정부관구사무국 작성일15-10-30 10:10 조회5,2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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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숙 수녀님께 드리는 가을편지

 

이제 아침저녁으로 완연한 가을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사실 요즘은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는지요?”라는 의례적인 질문도 입 밖에 내기가 거북한 시절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더욱 풍요롭고 편리해진다는데, 이 모든 것에 정작 ‘사람’은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자연에서, 정말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공장 굴뚝에서, 건물 위 전광판에서 ‘사람’으로 우뚝 서보려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지난 연말, 올해 초에는 그런 마음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서울의 차디찬 길바닥에서 오체투지로 온몸을 던져가며 세상에 호소도 했었지요. 모두 소박한 꿈을 현실로 살아보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사람들의 이런 호소에는 귀를 막고 있었지요. 그런 정부가 ‘헬조선’을 희망사회로 만들겠다고 최근 ‘노동개혁’이란 것을 발표하고, 입법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많은 노동자들과 예비 노동자인 청년들은 정부의 방안을 ‘노동개악’이라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여 정규직 문턱을 낮추고, 능력 중심으로 차등임금제를 도입하고,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파견 대상을 확대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노동개혁의 내용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처는 결국 해고를 더욱 쉽게 만들고, 비정규직과 파견직을 확대하고, 임금피크제는 임금만 깎고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 개혁안에는 가진 사람들에 대한 요구는 정말 없더군요.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노동자에게는 희망사회가 아니라 본격적이고 영구적인 절망사회의 개막으로 보입니다.

 

씁쓸하지만, 요즘 ‘갑’과 ‘을’이란 말을 많이들 쓰지요. 힘이 있는 정부, 재벌을 필두로 한 기업들은 물론 ‘갑’이겠지요. 그리고 이 땅에는 수많은 ‘을’들이 있습니다. 갑은 을과 소통을 하겠다고는 하는데, 예전부터 제대로 된 소통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네요. 갑은 을들을 위해 꼭 필요한 노동개혁이라며 밀어붙일 태세지만, 막상 당사자인 을들은 노동개악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개혁이라고 내놓은 방안이 그렇지 않아도 숨쉬기 힘든 을들의 목을 더욱 옥조일 태세입니다.

 

이 땅의 을들이 직접 나서서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보려고 합니다. ‘을’들의 국민투표! 혹시 어디서 들어본 적 있나요? 길 가다, 어디선가 예쁘장하게 마련된 기표소와 투표함을 보신 적 있나요? ‘을’들의 국민투표!는 글자 그대로 수많은 우리 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부는 물론 이 세상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 기획됐어요. 모두 ‘1만개의 투표소’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지요. 취지는 좋지만, 일의 추진은 그리 쉽지 않네요. 필요한 물품을 받아서, 기표소·투표함 한 세트를 상자에 담아내는 것에도 일일이 사람의 품이 들어가더군요. 적당한 곳을 찾아 기표소·투표함 상자를 보내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찾아와 사전 준비에 품앗이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렵지만, 기표소·투표함을 신청해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희망을 느낍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만 없어 잠깐이지만 가서 품앗이도 함께 했습니다.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이 23%를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창 꿈을 꾸어야 할 청소년들이 벌써부터 취직을 걱정합니다. 이들이 계속 절망하게 되는 것이 사회를 절망시킵니다. 수녀님, 우리들이 ‘사람’으로 존중받고, 청년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조금씩 이루며 살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해주세요. ‘을’들의 국민투표!는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추모기일을 하루 앞둔 11월12일까지 1차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찌 보면 묻혀버릴 작은 목소리들이 이 투표를 통해 힘을 얻어 큰 목소리로 세상에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을’들의 소박한 꿈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수녀님의 마음도 여기에 함께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수녀님께서 우리 자신도 포함되는 이 땅의 많은 ‘을’들의 희망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깊어가는 가을, 그동안 품었던 희망이 조금씩 열매 맺길 바랍니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한겨레신문 '왜냐면'에서 발췌 201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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